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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작업이 완료되어서 self release하려고 SoundCloud 계정을 만들었으나 등록이 안 되는 사태가 발생.

너무나 열이 뻗힌 나는 tumblr 스킨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Art is Begging

이 글은 힙합플레이야 닷컴의 게시판을 보다가 생각나서 쓰는 글 혹은 넋두리이기 때문에 욕설과 속어적 표현을 여과없이 적기로 했다. 욕은 쓸 때 확실히 써야 한다는 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이 글을 보면 심히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또한 이 글에는 오류가 많다. 나는 역사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의 역사적 고증에는 문제가 많다. 또한 논리적 문제, 잘못된 진실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부분은 내 이메일(dotandersonpark@gmail.com)로 지적해 주던가 하면 좋겠다.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게시한 이상 결국 누군가가 언젠가는 보게 될테니까.

난 나중 일을 생각 안 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후환이 두려워서 내 감정을 숨기는 사람도 아니다.

힙플 게시판에 상주하는 사람 모두가 병신이라는 말은 확실히 틀린 말이다. 그건 세상에 악인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썩었다고 말하는 것과 동급으로 멍청한 짓이다. 인터넷 사회나 현실 세상이나 병신들이 유난히 판치는 건 말썽을 일으키는 새끼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쉽게 주목하게 되기 때문일 뿐이다.

모두가 병신이 아니라는 말은 그래도 이 세상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같은 밝은 얘기를 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다. 이건 이렇든 저렇든 힙플 게시판에는 분명 좆 병신들이 있다는 얘기다. 병신이 병신인 걸 알면 병신이 아니라는 피타입 님의 가사를 두고 보자면 나 역시 사실은 날 병신이라 생각 안 하는 병신일지 모른다. 아니, 나는 병신이다. 힙플 게시판 보다가 생각난 글을 이런 폐쇄적인 느낌 강한 블로그에 써내려 가는 짓 부터가 내가 겁쟁이에 병신임을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잖은가.

스윙스 님의 새 앨범은 현재 힙플 게시판에서 제일 많이 까이는 앨범이다. 음악성이 어쩌구, 스윙스의 인간성이 저쩌구, 게다가 그런 비판에 대한 태도가 엿같다고 까는 글 까지. 이렇게 많이 까이는 앨범은 내가 한국 힙합을 듣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 처음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런 비판의 탈을 쓴 좆같은 비난에 대한 삿대질로 부터 시작한다.

비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2006년 내가 중학생일 때 부터지만, 찌질이 생활을 미치도록 오래한 나는 하루 종일 한 해 내내 음악만 들어서 그렇게 음악을 듣는 수준이 일반적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내 음악 취향에 일반적 기준에서 변태적인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음악과 구린 음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언컨데 스윙스의 이번 앨범인 [UPGRADE II]는 절대 구리지 않다. 핫 싱글이 없다는 주장에는 반박할 수 없어도 이 앨범의 음악성 자체가 구리다고 할 수는 없다. 음악성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는 부분이니까.

내 기억으로 이 음반이 힙플 게시판에서 처음 까인 건 앨범이 발매 된 뒤 약 한 시간 뒤로 기억한다. 힙플과 디시에 정확히는 인터넷 상에 흔한 병신새끼 하나가 요새 한국에서 유행중이라는 무개념 병신미가 넘쳐나는 글을 뿌렸다. 링크를 걸까 싶지만 귀찮아서 안 하련다. 아직 그 글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고. 힙플에서는 개같은 글 싸질러서 불을 지핀 다음 ‘이 아이디는 훔친 주민등록번호로 불법을 저질러서 만든 훼이크였습니다 ^^ㅋㅋ’ 이러고 도망치는 인간들이 넘쳐나니 벌써 지워졌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나는 이 비난과 비판이 뒤섞인 아수라장의 시작이 물타기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는 거다.

누가 어떤 식으로 반대를 해도 결국 중요한 건, 미쓰라 진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듣는 귀’이다. 잘 하면 안 깐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게나 좋은 음악을 뽑아낸 뉴올리언스의 더 미션은 난잡하다는 이유로 까였고 당 앨범의 비열한 거리라는 트랙은 그런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MC메타의 랩이 까였다. 버벌진트는 센스 넘치는 디스를 한 다음 ‘뛰뛰빵빵 비켜빨랑’ 가사로 까였고 1집 무명은 구성이 엉망이라고 까였다. 2집 누명이 나왔을 때에도 나는 분명 그 앨범에 대해 ‘영어와 한글을 너무 섞어서 랩을 해서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겠다’는 이유로 까는 글을 봤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들렸던 유엠씨의 앨범은 가사집에 괄호를 치며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운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까였다. 이런 식으로 수십 수백명의 사람을 그릇되게 묶어서 말하는 건 내 사상과 맞진 않아도, 괜찮아, 이건 그냥 넋두리니까.

김디지의 개 앨범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유령 친구라는 이름의 어둠의 루트를 통해 들은 개 앨범은 ‘리스너 우롱’이라는 뚜렷한 주제를 가진 앨범이다. 그리고 이는 개 앨범을 들어본 사람들에게 김디지를 비난하는 좋은 거리가 된다. 며칠전에 힙플 게시판에 김디지의 전 앨범을 뿌리겠다며 시비를 걸던 글을 봤다. 하던데로 힙플 아이디에 로그인 해서 씨발 새끼라고 욕 댓글을 달까 했지만 어차피 이런 글 몇 분 뒤면 차단될텐데라는 생각에 문자를 아꼈다. 예상대로 글은 차단됐다. 근데 사실 욕하던 사람에게 잘못은 없다. 그는 리스너로서 욕을 먹었고, 그래서 자신을 욕한 사람을 엿먹이려고 했을 뿐이다. 나를 엿먹이다니.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엿을 먹이겠어. 아마 이런 생각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마도 그는 김디지에게 욕을 먹기 이전에 수 많은 아티스트를 욕했을 것이다.

듣는 귀들은 자신이 욕 먹는 일에는 민감하고 창작자가 욕 먹는 일에는 둔감하다 못해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이유가 뭘까. 창작자는 자신과 다른 성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길 원하는 걸까. 무의식적인 존경심?  스윙스 님은 자신을 문 교수라고 부르라며 자신있게 말하지만 사실 음악하는 사람을 교수나 선생이 되라고 말하는 건 억지다. 스승이야 말로 진정한 사람을 넘어서 성인이 되는 경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티스트가 스승이 되는데 꽤나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거다.

이야기를 예술로 넘겨보자. 힙합이라는 문화적인 껍질을 벗겨내면 사람들이 욕하는 부분에는 음악이 남는다. 미학적 이론으로 예술에 대한 비평을 논리적으로 쓸 생각은 전혀 없다. 내 전공이 철학이라고 해봤자 난 겨우 6개월 남짓하게 배웠을 뿐인데 뭘 지껄이겠나. 누누히 말하지만 이건 그냥 넋두리다. 예술을 한다고 자부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넋두리.

예술이 갖는 딜레마를 아주 쉬운 말로 하자면 그건 ‘사람들이 많이 듣게 하기(접근성)’와 ‘내 밥줄을 지키지’ 사이에서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악에 장르를 클래식 작곡과 힙합적인 비트 메이킹이라고 본다. 힙합의 비트 메이킹은 장비가 갖춰져 있다면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 비트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과 고생을 무시한다거나 좋은 음악을 쉽게 만드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이런 식의 음악은 시도는 할 수 있다는 거다. 그것이 클래식 작곡과는 다른 점이다. 고전 음악사를 깊게 공부하거나 크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낭만주의나 고전주의에 대해 떠벌릴 수 없다. 화성악이 어쩌구 하는 범위도 마찬가지. 그냥 쉽게 말해보자. 당신이 취향이 아니야라고 변명을 해도 당신은 배토벤이나 모차르트가 하던 음악을 짠 하고 만들 수는 없다. 이건 유명한 두 사람 뿐이 아니라 그들에게 묻힌 수 많은 작곡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세상에 무관심 속에서 굶어 죽어간 클래식 작가의 음악도 따라할 수 없다. 시도할 엄두가 안 날 것이다.

대중음악은 많은 돈을 버는 대신에 사람들에게 쉽게 욕을 먹는다. 욕 먹어도 돈 벌면 그만이라는 말은 거짓말. 그정도로 냉정한 사람은 없다. 그정도로 냉정하다면 이미 그는 사람이 아니다. 눈은 감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귀는 닫을 수 없게 뚤려있다. 결국은 듣기 싫은 말을 듣게 되고 아무도 이해 못하는 괴로움을 느끼다가 목을 맨다. 그래서 더 발전을 한다고? 그렇게 발전해서 나올 때마다 욕을 퍼붓는데 대체 어디가 어떻게 발전 됐다는 거지. 형이 애정이 있어서 욕하는 거다 식으로 말하는 인간은 혐오스럽다. 우선 니가 내 형인지도 모르겠고 그 비판의 탈을 쓴 좆같은 비난에서는 조금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은 그럴지 모르지만 당신을 따라하는 새끼들은 안 그런다고요. 근데 왜 당신이 욕먹냐면 불을 지핀 게 당신이니까.

고전음악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다. 연주회를 한 번 하면 푯값이 내 한 달 용돈을 넘을 때가 많고 전세계에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라도 그들의 음악을 인정하고 기립 박수를 한다. 만드는 사람들, 연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안 할수가 없다. 그렇게라도 반드시 해야만 한다. 빌어먹을. 난 대체 예술이 그런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정신이 해이해지지 않게 라느니 군기를 잡아야 한다느니 개같은 말이 너무나 쉽게 나온다. 한국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 혹은 버릇 없는 애새끼는 맞아야 한다는 말 만큼이나 역겹다. 폭력으로 사람들을 지휘하는 일 만큼 동물적이고 하급인 게 또 있을까. 인간의 다른 존재를 지배하고자 하는 없어져야할 동물적 본능을 합법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밖에 안 보인다. 예술의 고지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이용하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탑을 쌓는 건 내 눈에는 바보 짓으로 밖에 안 보인다.

음악 얘기만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문학이나 미술을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사실 체육 활동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전혀 예술이라고 생각을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미술 역시 어떤 그림이던 보면서 감탄하는 것밖에 못하니까 뭐라고 말 할 수가 없다. 만화와 영화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제외하겠다. 취향으로 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다른 세상의 얘기는 제쳐두고 내가 발을 담그려고 하는, 이미 발을 담그고 있다고 자부하는 문학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문학은 사실 음악보다 더 심각하다. 예술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 중에는 문학이 글이라는 비 예술적인 형태를 빌리고 있으므로 순수한 예술이라 볼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다. 접근성과 폐쇄성의 문제는 더 심하다. 예전부터 사람은 나무를 죽어라 배어내고 책을 수십권 불태워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낙천주의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글 쓰는 일은 미치도록 무시당한다. 애초에 내가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선 계기도 ‘글은 아무나 쓴다’는 누군가의 발언 때문이었으니까. 실제로 아무나 쓸 거 같은 쓰레기를 토하는 분들도 계시고. 개같지만 그런 글이 예술의 신에 가호를 받아 잘 팔리는 경우도 많다. 돈으로 책을 만들어 돈을 벌고 이름 값을 얻고 다시 책을 만들어 돈을 벌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 도서관에서 살라고 말하던 옛날 사람들이 현대에 오면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망상하게 되는 정도이다.

난 도저히 순수문학이 뭐고 순수문학이 아닌 게 뭔지를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은 반 농담 반 진심으로 순수문학은 재미없는 글이다라고 말하는데, 난 재미없는 글은 보지도 쓰지도 않겠다는 주의다. 재미를 못 느끼겠다는데 ‘이게 얼마나 재밌는 건데. 멍청하신 분들은 이 재미를 몰라요 하여간 ^^;;’ 하고 코웃음 치고 싶지도 않다. 돼먹지 못한 엘리트 주의는 개좆같으니까. 이렇든 저렇든 난 그저 사람들이 재밌어서 자꾸 보려고 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재밌는 글로 칭찬 받으며 돈을 잔뜩 벌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순수 문학이니 장르 문학이니 나누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분들이 꼭 보면 뛰어난 작품을 봐도 무시하고 그러더라. 묶어 생각하기가 나쁜 이유 중 하나이다. 이 글에서 나도 묶어서 평가하는 멍청한 짓을 해버렸지만.

꽤나 자극적인 제목을 썼는데, 저건 이러한 연관성 없어 보이는 생각에 대한 종착점이다. 결국 예술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건 구걸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예전부터 예술하는 사람들은 무시당하며 밥을 굶었고, 죽은 다음에야 작품성이 인정 받아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 이런 경우는 도저히 손에 꼽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예술가가 시대를 앞선 것을 안타까워 할 건가. 그래봤자 불쌍한 예술가는 이미 죽었고 후대 사람들의 예술품 사들이기도 돈놀음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예술가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것 중 하나. 근데 이건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예술이라는 게 먹을 거 창고에 쌓아두고 할 게 없으니까 생겨난 거 아니었나. 사회 체제에 대한 얘기를 하면 여기까지 쓴 만큼의 글을 또 써야 할테니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선 저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사람들에게 욕 먹지 않으면서 예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거다. 우선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무료로 공개한다. 그리고 글 끝에 내 계좌번호를 적어놓고 돈좀 달라고 구걸을 한다. 나는 마사토끼 님이 그린 만화만 그려서 먹고살기라는 만화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지금 마사토끼 님을 먹여 살리는 건 잡지와 웹툰이지만. 그가 계좌번호를 적어놓은 칸은 적어도 나에게는 빌어먹을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돈을 왕창 버는(힙합 식으로 말해서make money라고 할까)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다. 나도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고 계좌 번호를 적을까. 근데 사실 이미 네이버 블로그는 만들어 놨다. 소설과 잡담도 몇 개 개설했다. 방문자는 아마 없겠지만. 이 글도 네이버 블로그에 썼으면 힙플 식으로 말해서 어그로 좀 끌었을 텐데. 이렇게 길게 써봤자 텀블러 같은 한국에서 인지도 없는 사이트에서 검색이나 되겠나.

노동의 신성함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화 관련 서적에서 인류가 노동을 신성시 여기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은 천시 됐다고 말하지만, 노동은 분명 중요하다. 그 이익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구조가 문제일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사랑하고 삶을 걸기로 결심한 예술이 천대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두서 없는 좆같은 넋두리 글 쓸 시간에 소설에 한 문장이나 더 추가하고 다듬을 걸 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카프카를 조금 더 어렸을 때 알았다면 내 삶에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건 올해 들어 내가 가장 자주 써먹는 한탄에 문장이다.

갑자기 존대어를 써봤자 어색하니까 그냥 이 말투로 말하겠다. 쓸데없이 재미없고 긴 글을 여기까지 봐 준 분들, 고맙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마음에 안 들거나 글이 기니까 세 줄 요약 해주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 분들은 맨 위의 문단에 써놓은 이메일로 말 해주길 바란다.

[Flash 9 is required to listen to audio.]
Bob Lennon by Endou Kenji from the album: Lost Kenji Tapes

번안가사


1절

해가 저문 뒤 어디선가

카레에 향기가 풍겨온다.

얼마만큼 더 걸어가면

집에 다다를 수가 있을까나

내가 가끔씩 찾아가던

그 가게의 크로켓은

언제나 먹던 그 맛으로

기다리고 있을까나

후렴 1

지구에 머리 위에 밤-이 온다.

나는야 지금 집으로 바삐 걷는다.

2절

내일 이야기를 미리하면

귀신이 비웃는다고들 하지

웃고 싶은 만큼 웃어-

라고 하고, 넘기면 돼

나는 말 하고 또 하련다

5년 후 10년 후, 이야기, 그 뒤에,

언제더라도

이렇게 같이 있을 거라고-

후렴 2

지구에 머리 위에 밤-이 온다.

나는야 지금 집으로 걸어가.

3절

비가 내려도

폭풍이 몰아쳐도

화살이 쏟아져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가로 막지 말아라

아무도 가로막을 권리는 없어

후렴 3

지구에 머리 위에 밤-이 온다

나는야 지금 집으로 걸어간다

온 세상에 밤이 찾아와

온 세상이 집으로 돌아가

마지막 절

이런 나날들이 너의 곁에서

언제까지나 이어져 가기를

(허밍)

원 가사

日が暮れて どこからか

カレ-のにおいがしてる

どれだけ 步いたら  家にたどりつけるかな

僕のお氣に入りの  肉屋の  コロッケは

いつもどおりの味で  待ってて くれるかな

地球の上に  夜が來る

僕は今   家路を急ぐ

來年のことを言うと 鬼が笑うっていうなら

笑いたいだけ  笑わせとけばいい

僕は言い續けるよ   5年先10年先のことを

50年後も  キミとこうしているだろうと

地球の上に  夜が來る

僕は今 家路を急ぐ

雨が降っても

嵐が來ても

やりがろうとも

みんな家に歸ろう   邪魔させない

誰にも止める權利なんかない

地球の上に  夜が來る

僕は今   家路を急ぐ

世界中に   夜が來る

世界中が家  路を急ぐ

そんな每日が  キミのまわりで

ずっと ずっと 續きます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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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곡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다.
  2. 최대한 원곡과의 음절 차이가 없도록 한다.

이걸 내가 왜 했는지 싶기도 하지만,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서, 한 번 해봤습니다.

사실 번안이라고 하기엔 ‘카레’라던가 ‘크로켓’같은 게 좀…이국적이죠.

Post what?

저렇게 써도 말이 맞나.

뭐 그렇든 아니든, 난 여기에 뭘 써야할까.

텀블러는 좀 포류중이다. 진지하고 오글거리고 우울한 건 트위터에 쓰기로 했고 일상은 미투데이에 반말 포스팅은 페이스북에 쓰기로 했는데 말야.

게다가 내 소설 작품은 네이버 블로그에 쓰고 있잖아. 누가 보긴 할까.

사실 네이버 케스트에 소설을 연제하고 싶어. 이름없는 신인이 그런 거 하겠다고 하면 들어줄까 싶긴 하다만.

내 미술품을 찍어 올려볼까. 음악을 올려볼까.

어쨌든 예술 블로그가 되겠구나. 킥킥.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할 건 많다. 하지 않은 이유는, 그냥이겠지. 다른 SNS도 포스팅 수가 많이 줄긴 했잖아.

Long Time No See

앞으로 이 공간은 음악을 올리는데 쓸까 합니다. 사운드 클라우드로 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글쎄. 어떻게 할까.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해 뒀다. 나는 지금 도끼와 더블케이의 앨범 리뷰를 준비중이다. 힙합에 있어서 문외한인 내가, 아니, 음악 자체에 있어서 지식이 부족한 내가 제대로 된 리뷰를 쓸 수 있으려나. 에이, 제대로된 리뷰가 어딨어. 그냥 쓰면 되지.

요새

글 하나에 집중하는 중이다.

잡 단편들은 생각하지 않고, 글 하나에 집중.

그렇다고 글이 술술 써지는 것도 아닌데.

나도 긴 글 좀 완성해보자.

너무나 즐거웠던 하루에 ― 브로콜리 너마저 2집 [졸업]의 ‘졸업’에 대한 감상문

 ’졸업 부르자.’

 내가 상기된 표정―아마 그러했으리라―으로 친구와 의형에게 말했을 때,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곡을 예약했고, 의형은 내가 말한 곡을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한 곡이 끝나고, 예정대로 졸업의 반주는 시작됐다.

 노래방은 멜로디 라인을 잡아주는 소리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내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내가 노래를 못 부르는 걸 누구를 탓하겠는가. 다행히 친구는 나보다 노래를 잘 불렀다.

 이미 분위기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었다. 즐거운 표정으로 우리는 가사가 너무 암울하다며 장난스럽게 우는 소리를 내고, 마이크 두 개로 이 미친 세상에서 행복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뒤에 길게 남는 반주는 넘기려고 했는데, 친구는 넘기지 않았다. 별 뜻 없었다. 지금까지 반주를 안 넘겼으니까. 혹은 친구도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충분히 훼손된 원곡을 더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였을지도.

 ’야 근데, 아까 바람이 분다랑 졸업은 너무 우울했어.’

 바람이 분다를 먼저 불렀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압구정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와중에 친구가 말했다. 그랬나. 동의는 했지만, 별생각 없었다. 우린 그때 즐거웠잖아. 그리고 지금은 너무 춥다고. 의형에게 몸을 기댄 나는 그 정도의 생각만을 했다.

 그리고 난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 앨범을 샀다. 앨범을 사기 전까지 잘 들었고, 불법으로 음악을 받는 건, 인디씬에서 음악을 한다는 분들에게는 잔인한 일이니까. 아버지도 책과 앨범을 살 때는 돈을 아끼지 말라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아직 스무 살은커녕 열아홉 살도 되지 않은, 그러나 스무 살의 삶을 살게 될, 그 시간에 이 노래를 들은 나의 감상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유예기간 중 쓰는 글

나는 과연 내가 아는 것 중 어느 정도를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을 쓰기 위한 단어들이 몇 개 떠오르다, 유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아는 유예의 뜻은 과연 정확한가?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다.

난 사랑에 유예기간을 두게 된 것이 아니라, 이별에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작가로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꼭 이런 식일 필요는 없을 텐데. 글을 쓰기 위해서 추억을 팔려 하는 나에게 엿을 먹이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추억을 팔기 위해 추억을 악몽으로 인식하는 거라면, 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위선이고 합리화인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방법이 있다.

길몽을 꾸는 것? 아니, 행복한 꿈을 꿔도 그것이 꿈임을 알게 되면 어느 순간에는 깨어나고 싶어진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으려면, 현실이 악몽이어야 한다.

악몽을 자각하면 당장에 깨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이 악몽이라면, 누가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할까.

그러니까, 깨고 싶지 않은 꿈은, 꾸면 안 좋다.

그러나 난 이미,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꿨다.

마음이 아픈 아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지하철에서

다섯 번째. 만취한 남자가 뒤틀린 손으로 닫히는 스크린 도어를 막은 지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운전사는 지하철의 문을 열었다. 노약자석에 앉아 만취자의 행동을 바라보던 할머니들이 한숨을 쉰다.

“여기 앉으세요.”

누군가 만취한 남자를 불러 노약자석에 앉혔다. 만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비비며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창하다 자리를 빌려준 무리를 자신과 같이 술 먹던 이들로 착각하고 치근댄다. 무리는 만취자를 버려두고 다음 역에서 급히 내린다.

“뭐!’

계속 정신 못 차리고 해롱대던 남자에게 옆자리 노인이 소리친다.

“술 좀 곱게 먹어!”

얼핏 보기엔 노인이 화난듯하지만, 말하는 속은 도리어 남자를 걱정하고 위로한다. 남자는 죄송하다 말하며 몸을 비비 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노인을 형님이라 부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맞은편에 앉아 만취자를 걱정 반 한심 반으로 바라보던 할머니들이 웃는다. 술 좀 적당히 마시라며 노인을 거들어 훈계하기도 한다.

“여기 어딘지는 알아?”

남자가 몸을 일으키자 노인이 다시 호통한다. 혀 꼬인 소리. 의외로 남자는 정확히 역의 이름을 댄다. 만취한 와중에도 자신이 내릴 곳을 정확히 알던 남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파리 내쫓듯 가라는 손짓을 하고, 남자는 들어올 때만큼이나 비틀거리며 지하철을 나선다.

” 남자가 저렇게 취하면, 큰일이 있는 거에요. 뭔가 안 좋은, 좋은, 일.”

노인이 맞은편 자리 할머니 무리에게 말한다. 할머니들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인다. 열차 안은 만취자가 들어오기 전만큼 조용해진다. 노인이 헛기침을 한다. 헛기침은 불규칙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노인의 헛기침 사이로 역 몇 개가 지나가고, 할머니 무리 중 둘이 사라진다. 남은 할머니가 눈을 감는다. 노인은 머리에 쓴 모자를 한 번 누른다. 눈을 감는다. 헛기침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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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과 인간 지옥에서 시달리며 썼습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기념 글은 싱글들에게 바칩니다.

싱글이 좋은 거에요.

즐거운 성탄절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