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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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기간 중 쓰는 글
나는 과연 내가 아는 것 중 어느 정도를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을 쓰기 위한 단어들이 몇 개 떠오르다, 유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아는 유예의 뜻은 과연 정확한가?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다. 난 사랑에 유예기간을 두게 된 것이 아니라, 이별에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작가로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꼭 이런 식일 필요는 없을 텐데. 글을 쓰기 위해서 추억을 팔려 하는 나에게 엿을 먹이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추억을 팔기 위해 추억을 악몽으로 인식하는 거라면, 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위선이고 합리화인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방법이 있다. 길몽을 꾸는 것? 아니, 행복한 꿈을 꿔도 그것이 꿈임을 알게 되면 어느 순간에는 깨어나고...
Jan 1st
Decemb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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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지하철에서
다섯 번째. 만취한 남자가 뒤틀린 손으로 닫히는 스크린 도어를 막은 지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운전사는 지하철의 문을 열었다. 노약자석에 앉아 만취자의 행동을 바라보던 할머니들이 한숨을 쉰다. “여기 앉으세요.” 누군가 만취한 남자를 불러 노약자석에 앉혔다. 만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비비며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창하다 자리를 빌려준 무리를 자신과 같이 술 먹던 이들로 착각하고 치근댄다. 무리는 만취자를 버려두고 다음 역에서 급히 내린다. “뭐!’ 계속 정신 못 차리고 해롱대던 남자에게 옆자리 노인이 소리친다. “술 좀 곱게 먹어!” 얼핏 보기엔 노인이 화난듯하지만, 말하는 속은 도리어 남자를 걱정하고 위로한다. 남자는...
Dec 24th
“꽃진나무사이로송전탑이섰다. 날이 맑음에 잇몸이 드러난 미소는 쇠살뒤에서이다.”
– 이천십년어느봄. 「미치기 좋은 날」
Dec 20th
마주진 곳에서 고개만을 쳐들고
두손에모래를가득들쥐고하염없이어두운하늘만을바라보더라도무언가답이올때까지만이다그다음에는남을일이없다쉽게말하고넘어간다. 주위를 둘러 보아라. 누가 또 모래를 털고 있더냐. 내하늘에구름이끼면저하늘에도구름이끼어어두움이라속여도속여도저들의라디오와나의하늘은전혀다른소리를내지않더냐고되묻는다. 그 시간에도 내 주의를 보아 누가 또 모래를 털고 있어 같은 움큼을 풀어 해치더냐. 그렇게 물어 오는가. 2010. 12. 15.
Dec 15th
놈팽이
나는 놈팽이*다.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너 벌써 뭐 됐을 거’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듣는 예술가를 향한 부모의 말이 언제나 이런 식이어서 그런지, 부모님도 속으로는 저런 말을 꽤 했으리라 짐작한다. 부모님 앞에서 나는 놈팽이일 수 밖에. 가방끈에 구애받지 않으려 했다. 뜻대로 되지 않을 거 같지만. 내가 수험생이 된 이유는 순전히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라고 여겼다. 무슨 불만이 있든 내가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게 도와준 분들이다. 효도해야지. 그래서 열심히 했다. 가방끈이 내 삶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부모의 마음은 결정할지 모르니. 그래서 내가 놈팽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수험생 생활의 실패―아직 뚜껑을 열어보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표현은...
Dec 12th
중독
그것이 만화던, 음악이던, 게임이던, 어떤 네티즌이 아무렇게나 써놓은 것이건 상관없다. 그것이 성인물이던, 모든 사람이 쓰레기라 부르는 것이던 상관 없다. 우선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봤다면,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봐야 한다. 한 번 본 이야기를 끝까지 보지 않으면 계속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난 이야기 중독이다.
Dec 4th